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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 양사언

 
나의 북한 문화유산 답사기 (하) - 금강예찬
국내도서>여행
저자 : 유홍준
출판 : 중앙M&B 200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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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 양사언은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사언은 그런 도덕적인 시로 유명해질 분이 아니었다. 그는 대단히 낭만적인 분이었고 시보다 글씨로 유명했는데 조선시대 4대 명필로 손꼽혔다. 4대 명필로 안평대군은 유려하고 격조 높은 행서, 한 석봉은 정확하고 또렷한 해서, 김정희는 추사체라 불리는 강렬한 개성의 서체로 이름 높았다. 그리고 양사언은 거칠 것 없고 막힐 것 없는 호쾌한 초서가 특기였다. 
 양사언에 대하여는 '국조인물고'에 그의 모갈명이 실려 있고, 그의 시를 모아 펴낸 '봉래시집'(전4권)이 있고, 봉래집 말미에는 서경 유근이 그의 전설적인 글씨에 대해 쓴 '비자기'가 실려 있어 그의 예사롭지 않았던 생애르르 소상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양사언의 일생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설화로 만들어져 '청구야담', '계서야담', '기문총화' 같은 책에 비슷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르게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일생은 더욱 전설적인 것이 되었다. 
 양사언의 본관은 청주, 자는 응빙이고 주부를 지낸 희수의 후처의 아들이었다. 그는 법적으로 서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서자로 알게 된 데에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양사언의 아버지 양희수는 천성이 산수 유람을 좋아하였다. 한번은 백두산까지 올라 두루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안변을 지날 때 낮잠에 말죽을 먹이고자 주막에 다다랐으나 집집마다 문을 잠그고 비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시냇가에 한 어염집이 보여 거기를 찾아가게 됐다.
 이때 마침 집주인은 들일(혹은 계회)나가고 열여섯 살 소녀가 혼자 집을 보고 있었는데 점심 시중을 들고, 말죽 한 통을 먹이는 것이 아주 곱고 영리해 보였다. 양희수는 떠나면서 이 아리땁고 친절한 소녀에게 사례를 하려 했으나 굳이 사양하며 접빈객은 사람의 도리일 뿐이라고 했다. 이에 양희수는 더욱 소녀를 기특하게 생각하고 감사의 뜻을 남기고 싶어 손부채에 달려 있던 향합을 풀어주니 이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그 후 몇 해 뒤 소녀는 그 향합을 들고 양희수를 찾아와 "여자의 행실로 사람의 신물을 받고 어찌 다른 데로 시집가리오"라며 한사코 말리는데도 기어이 양희수의 집에 들어와 살았다. 양희수는 처음엔 소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소녀는 정성으로 집안 살림에 힘썼다. 마침 양희수는 상처하였던지라 소녀를 맞아들여 본ㅊ가 쓰던 방에 들게 하고 가정 살림을 맡겼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아들이 생겼는데 그가 곧 양사언이다. 조선 사회에서 후처는 첩과 달라 정실과 똑같으니 양사언은 서자가 아닌 것이다. 

출처: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하,유홍준 p.205-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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